Sherlock Jr.
러닝타임 내내 버스터의 귀여움이 주된 내용이라 했더니 주변 반응이 시큰둥했다. 설명을 못한 내 잘못이 크다. 시적담론의 균형. 다양한 기법으로 이루어진 영화 속 영화의 영화적 탐색. 경이로운 풀샷 액션과 더불어 기발한 발상으로 고안된 극의 모든 요소가 생생하고 치밀하게 플롯을 향해 짜맞춰져 버스터의 반전매력도 극대화.
내 입구 중 하나! (붕붕) |
The Great Stone Face
이것이 첫 버스터 키튼인 감상자에게는 나쁘지 않을 작품세계 요약. 나레이션은 없는 편이 낫고, 다큐로서는 부족하다. 디스크 여섯 장 짜리 작품집에 포함된 영상이라 내용을 짐작할만한 정보가 없어 낚였으니 정리해둔다.
있음 : 아름다운 인트로씬, 얼굴 각도가 조금 다른 군복무 사진(둘 다 인터넷에서 볼 수 없음)
없음 : 인터뷰, 제작비화, 출연진 및 스텝과 업계 관련 증언, MGM 계약 이후 버스터의 작품과 생활, 유성 작품, 프랑스에서의 활동, 주역으로서가 아닌 기여활동, 30년이나 늦게 찾아온 성공, 아카데미 공로상 수상 영상 등.
분명 리플렛(...)에는 60년대에 이르기까지 버스터 키튼의 방대한 작품세계를 되짚어본다 하였으나 제너럴까지만 다룬다. 전성기에 함께했던 에디 클라인이 감독한 다큐들이나 Buster Keaton Rides Again (1965)를 상영하는 편이 더 흥미로웠을텐데 아쉽다. The Railrodder 출처의 몇 장면과 그 중의 한 시퀀스를 염두에 둔 듯 아름다운 인트로만이 60년대 것이다. 적어도 65년 이전에 저 인트로가 촬영되어야 하는데, 이 다큐가 워낙 짜집기라 오리지널인지는 다소 의심스럽다.
그 아름답고 버스터다운 인트로에서 키튼은 해안에서 모래톱으로 뚜벅뚜벅 몸소 클로즈업해온다. 운명의 기계인 카메라 속에 스스로 들어간 시지프의 생명은 시공을 넘어 그의 현존을 지켜본다. 일회성과 불가역성을 벗어난 세계이자 대상으로 체화된 인생의 정경에서, 그는 결코 결코 웃지도, 연민 받으려 하지도 않았다. 기쁨과 설렘, 고통과 체념, 환상과 실재가 무화된 풍부한 무표정과 몸짓의 언어를 통해 파괴는 창조로, 죽음과 망각은 웃음과 현재로 전위된다. 더없이 진지하게, 그의 젊은 날 영화 속 한 장면에서처럼 그는 걷는다. 정말 웃기려고만 했을 뿐일까. 그는 벼랑에서 굴러떨어지고 폭풍우에 날아가면서도 저러하였다. 버스터는 여전히 걸어오고 있다. 그저 걸어오는 그에게서 나는 용기를 얻는다. 레일로더의 같은 장면에 비해 다큐의 것은 차림새도 더 버스터답고 시간여행적이다.
키스톤 스튜디오 시절 아버클과 작업한 단편 3편(The Butcher Boy, The Rough House, Coney Island)에서 발췌한 영상(...)과 철학관이 뚜렷한 Cobs(!), The Day Dream(!), The Balloonatic, General이 거의 통째로 들어있지만 음악도 별로고......각각 따로 감상하는 편이 보다 추천할만 하다. 더군다나 아버클 작품 중엔 버스터가 피식거리거나 수줍음 또는 겸연쩍은 미소를 띤 연기를 볼 수 있는데, 코니 아일랜드에서 폭소하는 장면만을 유일하게 웃는 장면으로 소개했다. 이상한 춤 추는데 멋있어서 심쿵하는 버스터(The Cook...... )도 빠짐!
The Navigator
복부 파열 및 턱뼈가 부러질 위험은 여전하지만 비교적 덜 무모한 스턴트(...)를 비교적 적게(...) 사용하고도 재미있게 만들어져서 몹시 기쁘다! 입덕 계기인 3장의 사진 가운데 나를 가장 긴장시켰던 비주얼로 나옴.
잠수복 하고도 모자라니!!! |
The Playhouse
공연과 삶의 경계가 섞이는 극장은 버스터의 꿈이자 현실이다. 그를 만들고 그가 만들었던 극장의 생활... One Week와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인데 앞의 6분 가량 없이 버스터가 기상하는 씬부터 상영되었다. 후에 해설자도 아쉬워했지만, 더없는 충격. 리플렛에 붙은 글도 딱 그 6분에 해당하는 내용이었고 난 당연히 버스터들이 활개치는 그 6분을 극장에서 볼 일념으로 다른 일 다 제치고 나왔는데......소실되었다니... 소실이라니...... 그게 그렇게 귀한 줄은 몰랐어… 귀가하자마자 급히 뒤져 내가 가진 판을 다시 확인하고서야 안도함. 디지털 리마스터링이라더니 어찌 그토록 중요한 시퀀스를 복원하지 않은 건가... 그 장면이 없는 데도 리플렛을 그렇게 썼단 말인가.
상영되지 않은 6분에는 흑인분장의 희화도 포함되어 있다. 불편하지 않은 대사지만, 민스트럴이 당시 보드빌의 흔한 소재였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시뮬라시옹한 상징들이 이어지고, 버스터가 어릴 적부터 연기했던 원숭이 극의 내공을 볼 수 있다. 자주 넘어지는 무대배경과 객석의 반응이 공간과 극의 개념을 환기시킨다.
The Saphead
입덕 당시 인터넷에 없던 작품이라 이번이 첫 감상. 벨보이나 카지노 일꾼으로 스쳐가는 흑인에게서 당시 사회상의 위화감이 느껴진다. 버스터 감독작이 아니기에, 부잣집 아들로 좋은 옷 입고 빈둥거리는 버스터를 보는 외에 그다지 특이점은 없음. 꽃을 든 버스터는 언제나 옳고, 함부로 던져질 때 마다 가슴 아프다. 연인인 아그네스까지 망충한 가운데 발렛이 너무 선하고 좋은 사람이라 설렌다. 버티의 방으로 사용된 세트는 셜록 주니어 중의 스크린에도 잠시 나온다.
Our Hospitality
포럼 극찬으로 안 보고 아껴두었던 작품. 조 로버츠와의 마지막 작업이자 The Haunted House에서도 호흡을 맞췄던 나탈리 탤매지와 신혼이었던 버스터가 함께 열연했다. 초반의 선선한 풍광과 여유는 장편다운 매력. 숙명적인 불행에 직면하여 굴하지 않는 침착한 양심과 우울한 존엄으로 1830년대 캔필드와 맥케이 가의 실화를 조명한다. 잘생기고 키가 훌쩍 큰 적대가문 사람들과 서도 왠지 멋있는 버스터에 눈이 간다. 거의 마차처럼 생긴 객차가 생소한데 기차를 좋아하는 버스터를 믿어도 되겠지. 죽거나 다치기에 충분한 액션의 절묘한 맞춤은 여전하다...
The Love Nest
배경에 국한하지 않는 공간 해석력과 비약으로 늘어난 재미가 감각적. 버스터 필체가 예쁜데, 가독성을 위해서인지 어느 판을 보아도 편집되어 있다. 이 작품도 버스터가 직접 쓴 아포리즘으로 열린다. 아무리 아름다운 황혼도 이별의 말에는 슬플 뿐에서 이어지는 실루엣이 꿈처럼 아련하다. 남은 선원 목록과 경계하는 버스터가 인상적이며 조 로버츠의 분위기는 단연 독보적. 버스터적인 메타 서사는 질리질 않아.
High Sign
에디 클라인과의 이상적인 조합으로 첫 작품에서 이미 돋보였던 개성이 한껏 무르익어 독창적인 동선의 세트활용과 기념비적인 프레임 분할, 스크립트까지 촌철로 최적화, 직관적 상상력이 빛을 발한다. 와중에 태가 나는 사격 자세가 근사하다. 자막은 언어유희보다 의역을 따랐으나 그만하면 괜찮은 편인 듯. 대머리 독수리단으로 두운을 맞췄으니 ㄷ으로 가야할텐데 의미변질은 좀 그러니. 형용사 '살기등등'은 적절했다.
이 작품 촬영에 보트가 필요했을까? 언제인지 모르나 카리스마 넘쳐서 무척 좋아하는 사진 |
Steamboat Bill Jr.
여기선 버스터 아니라고 포크파이 모자를 급히 숨기는 모습이 귀엽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일까? 유연하게 소화된 불가능해보이는 스턴트. 건물이 홀랑 부숴져내리는 허리케인에 쓸데없이 맞서며 날리는 실루엣이 아름답다. 이 작품의 흥행 저조까지 더해져 MGM으로의 길을 재촉한 걸 상기하면 저 폭풍우씬이 곧이 보이지 않는다......
줄곧 신경쓰였는데, 상영 시작 전에 나오는 특별전 홍보 영상 중 제너럴과 항해자 부분이 잘못 발췌되었다. 전자는 극장과 경찰, 후자는 보트의 것.
시간낸 첫날 상영 시간에 늦지않으려 뛰었더니 진짜 병신되었는지 수술한 무릎이 마치 비틀어진 듯 아파서 이후 달리기는 아예 봉인. 버스터 저 양반은 그렇게 위험한 걸 수두룩하게 찍고도 장애없이 70 넘게 살았는데 하하. 시험 끝나고 또 보러간다ㅠ 진짜 돈만 더 있어도 아끼는 작품들을 다 보는 건데 커시커시 통자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