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Lucy

"피터…, 촌스러운 이름을 암호로 쓰는 건 부끄러운 일이야."

 그저 프롤로그 가운데 대사 하나가 마음에 걸려 더 지켜보기로 한 것이 인생 웹툰이 됨.

눈마주쳐오는 목소리가 남아 빗방울처럼 아포리아의 동심원을 흔든다. 아무리 치밀한 구조의 작품이라도 우리시대에 질문을 던지고 이를 마주하지 않는다면 지적유희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이 작품에서 특히 좋았던 건, 현상을 나열하기에 그치지 않는 진실로 접근하기 위해 택한 환상적 서사의 균형 : 피터라는 초자연적 존재, 유한한 계약인 놀이, 영원의 이상향, 죄악과 정의 양극의 모순을 모두 감내하는 자기파괴적 수행, 힘의 무상함 등 원전의 동기로부터 보다 나아가 불길하고도 매혹적인 전설과 기담에 깃든 인력처럼 작용하는 환상적 요소들. 오스카 와일드가 극적인 언어로 어딘가 아득한 배경의 동화처럼 그 마법을 연출하였다면, 팬피터는 흔히 볼 수 있는 존재들, 특별한 적 없었던 가까운 모습들, 혹하고 무너지기 쉬운 우리 영혼에 눈을 맞춘 채 잊혀진 소망과 부름을 포착하며,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인 비정형의 교차점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글로우의 잔상처럼 그 문제가 매듭 지어질 수만 있다면 그건 얼마나 소중한 시작일까. 이건 그냥 이야기이되 이야기가 아니다.

 작품을 보는 내내 덧생각나던 싸늘하고 건조한 기류. 그때 내 발가락은 얼어서 매끄러웠고 나는 늘 무관한 곳에 있었다. 나를 아는 양 굴었던 그들을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내겐 단지 어스름한 그림자였지만, 어떤 초목에게 그것은 아주 짙고 가까워 지나가기까지 죽도록 오래 걸린다.

 여기 피터는 징그러운 구석없이 아이답다. 나도 연애를 조장하는 셰익스피어 작품이 싫었기에 후반에 나오는 피터 심리에 공감. 본래 루시의 이름은 릴리였지만 호랑나리와 겹쳐서 바꾸었다고 한다. 그 이름이 우연이라니 더 근사하다...

"……칭찬해주는 이 없고,
사랑해주는 사람 없었던 소녀……
이끼 낀 바위 틈 반쯤 숨은 제비꽃처럼,
어두운 밤하늘 홀로 빛나는 샛별처럼…
…세상에 그녀를 아는 이 없지만…
내겐 아주 큰 차이."

부디 작가님께서 건강하시고 작품의 훌륭함에 걸맞게, 배리만큼 잘 버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