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크너 같다 싶더니 부르크너. 시대배경와 이탈리아적인 빛 때문인지, 선입견 때문인건지 금관의 세기말적 입자감이 액자식 이야기를 들을 때와 같은 묘한 부조화를 자아냈다. 이 양반도 차마 음악을 잘라내지 못하는 부류인 듯. 어떤 영화는 연주자가 주연이라 콘서트 장면이 극의 절정인데도 연주를 편집해서 몰입을 방해하는데, 비스콘티는 걍 흘러가게 놔둔다.
한 남자에 대한 사랑 말고는 세상 그 어떤 것도 중요치 않은 여인이 나온다, 여자란 어쩔 수 없다느니 수군대던 인물 그대로. 민요로 전해질 정도로 흔한 이야기다. 먼 저편으로 추구되어야만하는 국가, 나약하고 이기적인 필멸의 존재들. 남주는 처음부터 그런 끼가 보였으나, 여주는 처음에 참 매력적던 만큼 무너져가는 과정이 황당할 정도로 개연성이 떨어져 보였다. 여기 또 짜증나는 여자 있네, 그러면서 왠지 여자가 나오면서부터 일이 꼬이고, 지금까지 절친이었던 사람들이 틀어지기 시작하고 기타 등등 좀생이 짓을 봐야하는 영화들이 생각났다.
The Way Back에서 이레나가 처음 등장했을 때 나는 몹시 불안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그녀가 아직 어린 소녀라는 걸 알고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얘 때문에 내용이 구질구질해지거나 하지는 않겠군!' 문학의 경우 남성작가에 의해 제시되더라도 '이상하게' 편향된 여성상은 드문 편인 것 같다. 오늘날 널리 읽히는 작품들은 거의 악인을 묘사할 때 조차 인물에 대한 순수한 관심과 목적을 지닌, 몹시 관찰하고 숙고하는 작가들에 의해 입체적으로 형상화되었다. 그러나 다수의 영화 작가가 써먹는 여성인물은 편파적인 성질을 띨 때가 있어서,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원래부터가 알 수 없는 사고의 벽이 존재하므로 싸울 수 밖에 없고, 서로 공감하고 지원해주길 기대할 수 없다고 소통을 한계 짓는 연출도 드물지 않다. 옛날에 만들어진 영화들이 벡델테스트가 시사하는 의미를 일찍 깨닫고 참고했다면, 시망을 초래하는 여자라도 그냥 가지가지 인간이 있구나 싶게 묘사할 수 있었을텐데.